폐 수술 엿새 만에 젤렌스키와 통화한 교황, 러 점령 올레시키 '인도적 휴전' 거듭 촉구

바티칸·우크라이나
교황 레오 14세가 19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러시아가 점령한 헤르손주 올레시키의 인도적 휴전을 다시 요청했다. 교황은 사흘 전인 16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같은 요청을 했고, 이를 우크라이나 쪽에도 전했다. 교황청 공보실은 이날 늦은 오후 통화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교황은 13일 로마 제멜리 종합병원에서 오른쪽 폐 하엽을 떼어 내는 수술을 받고 17일 퇴원했으며, 수술 뒤 엿새 사이에 양국 정상과 잇달아 통화했다. 드니프로강 왼쪽 기슭의 올레시키에는 우크라이나 당국 추산 약 2천 명이 식량과 전기, 물 없이 갇혀 있다.
교황은 푸틴에게 낸 휴전 요청을 젤렌스키에게도 다시 전해
교황청 공보실 발표에 따르면 교황은 통화에서 "헤르손 지역 올레시키시의 심각한 상황(the grave situation in the city of Oleshky, in the Kherson region)"을 거론하며 자신이 "러시아연방 대통령에게 제시한 인도적 휴전 요청"을 상기시켰다. 이어 "양측의 협력으로 식량과 의료 지원이 전달되기를" 바란다며 "민간인의 자발적이고 안전한 대피"도 함께 요청했다. 공보실은 교황이 대화와 평화를 위한 교황청의 노력을 재확인했다고 덧붙였다.
Nella giornata odierna, il Santo Padre Leone XIV ha avuto un colloquio telefonico con S.E. il Signor Volodymyr Zelensky, Presidente dell’Ucraina. pic.twitter.com/kfWYh61t4y
— Segreteria di Stato della Santa Sede (@TerzaLoggia) October 19, 2026
교황은 푸틴 대통령에게 휴전을 요구한 데 이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는 그 요청을 알리며 구호품 전달을 위한 양측의 협력을 당부했다. 크렘린은 16일 통화 발표에서 올레시키(러시아명 알료시키) 주민의 안전을 지키고 생필품 공급을 시작할 여건을 마련하도록 돕겠다는 교황청의 의사에 지지를 표했다고 밝히고, 양측이 이 문제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크렘린은 발표문에서 '휴전'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교황청 매체 바티칸뉴스에 따르면 교황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5년 5월 12일 첫 통화를 했고, 같은 달 18일 즉위 미사 뒤에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2025년 7월 9일과 12월 9일 카스텔 간돌포에서 다시 만났으며, 2026년 4월 3일에는 부활절을 맞아 통화했다.
젤렌스키는 교황이 투병 중에도 우크라이나를 기억한다며 감사를 표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키이우 시각 19일 오후 10시 14분 통화 내용을 공개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이 수술을 받은 교황의 "완전하고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교황이 받은 수술을 "초기 단계에 발견된 오른쪽 폐의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이라고 설명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도 성하께서 우크라이나를 기억하고 우리 국민을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하다(His Holiness remembers Ukraine and prays for our people)"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의 확전 상황과 우크라이나 도시·마을에 대한 러시아의 끊임없는 공격을 교황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두 사람은 "일시 점령된 올레시키의 인도적 재앙"을 논의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그곳 주민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필요한 결정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교황이 이 문제를 두고 러시아 측과 접촉한 내용을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알려 줬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존엄한 평화를 이루려는 교황의 지지와 노력에도 감사를 표했다.
교황은 입원 중 먼저 푸틴에게 전화를 걸어
교황청 공보실에 따르면 교황은 16일 푸틴 대통령과 통화하며 "헤르손 지역 올레시키시의 심각한 인도적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식량과 의료 지원이 도착할 수 있도록 휴전을 요청했고, 민간인의 "자발적이고 안전한 대피"도 촉구했다. 당시 교황은 수술 뒤 제멜리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같은 날 통화 내용을 공개한 크렘린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교황의 쾌유를 빌고, 분쟁 해결을 도우려는 교황의 의지와 인도적 노력에 감사를 표했다. 교황이 올레시키 민간인에 대한 우려를 밝히자 푸틴 대통령은 그곳의 어려운 인도적 상황은 "키이우 정권의 책임(the Kiev regime's responsibility)"이라고 말했다. 크렘린은 이날 통화를 "건설적이고 서로 존중하는" 대화였다고 평가했다.
통화는 교황이 먼저 제안했다.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16일 성심가톨릭대학교 학술회의 참석 중 "이 포위된 도시의 사정을 호소하려고 주도권을 쥔 것은 교황 성하였다(È stato il Santo Padre che ha preso l'iniziativa per perorare la causa di questa città assediata)"고 말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올레시키에 "탈출 통로가 필요한 민간인 약 2천 명"이 있다며, 푸틴 대통령이 교황의 요청을 실행에 옮기기를 바란다고 했다.
교황과 푸틴 대통령의 통화는 레오 14세 즉위 한 달이 안 된 2025년 6월 4일에 이어 두 번째다. 교황청은 그동안 마테오 추피 추기경을 모스크바에 두 차례 보냈고, 두 번째 방문은 2026년 9월 말이었다. 폴 리처드 갤러거 교황청 외무장관도 2026년 8월 사흘 동안 모스크바를 찾았다.
교황은 푸틴 대통령과 통화한 16일 세계 식량의 날 메시지도 냈다. 취동위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사무총장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교황은 "빵은 지정학적 압박의 도구도, 변동성 큰 금융자산도 되어서는 안 된다"고 썼다. 또 "결코 전쟁의 무기로 쓰여서도 안 된다"며 "누구에게든 빵이 닿지 못하게 막는 것은 인간 존엄에 대한 끔찍한 모욕"이라고 했다. 앞서 11일 삼종기도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언급하며 흑해를 통한 곡물의 안전한 운송을 허용해 달라고 당사국에 호소했다. 당시 교황은 "수백만 명의 일용할 양식이 전쟁의 인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올레시키에는 약 2천 명이 식량·전기·물 없이 갇혀 있어
올레시키는 헤르손시와 드니프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도시다. 현재 러시아군이 점령하고 있다. 바티칸뉴스는 헤르손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파괴됐고 도로에는 지뢰가 깔려 있어 빠져나올 통로가 없다고 전했다.
헤르손주 군사행정청은 9월 27일 러시아군이 올레시키에 주민 약 2천 명을 붙잡아 두고 있으며 이 가운데 어린이가 50명 가까이 된다고 밝혔다. 행정청은 주민들이 식량과 전기, 물 없이 지내고 있고 도시를 빠져나가는 길이 사실상 막혀 있다고 설명했다.
유엔 인권감시단(HRMMU)은 6월 25일 보고에서 올레시키와 흘라 프리스탄 주민 20여 명을 면담한 결과를 내놨다. 감시단은 2026년 들어 두 곳에서 민간인이 최소 29명 숨지고 54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3월 5일에는 올레시키에서 식량 배급 줄에 드론이 떨어져 민간인 2명이 숨졌다. 5월 초에는 드론이 지역 의료인을 다치게 했고, 곧이어 날아온 두 번째 드론이 그 의료인과 도우러 온 남성을 숨지게 했다. 6월 2일에는 식량과 구호품을 실은 민간 차량 행렬이 도시 입구에서 지뢰를 밟아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감시단에 따르면 올레시키의 마지막 식료품점은 2026년 1월 정상 영업을 멈췄다. 6월 24일 기준으로 5월 26일 이후 올레시키에 식량이 들어가지 못했다. 다친 주민 4명은 스카도우스크로 옮겨 치료받아야 했지만 대피하지 못했고, 병원 환자 1명은 이송을 기다리다 숨졌다. 자원봉사자들이 몇 달에 걸쳐 약 180명을 빼냈는데, 가장 큰 규모는 5월 9~11일 사흘간 교전이 누그러진 틈에 올레시키를 빠져나온 32명이었다. 대니엘 벨 감시단장은 "사람들은 나갈 수 없고, 식량은 들어갈 수 없으며, 아프고 다친 이들은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며 "현지 휴전이 절박하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올레시키를 포함한 헤르손주 점령지 최전선 마을에 민간인이 최대 6천 명 남아 있고 이 가운데 어린이가 180명이 넘는다고 추산한다. 감시단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대피를 위한 국지 휴전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드론으로 강 건너 식량 수송을 계속해
헤르손주 군사행정청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과 행정청은 3월부터 드론으로 드니프로강 너머 올레시키에 식량을 날라 왔다. 제30해병군단과 제34해병여단 '보리스펜', 국가근위대 제11여단 예하 '볼하리치' 부대, 국가근위대 제34연대, 제79국경경비대 등이 작전에 참여했다. 행정청이 가장 큰 규모의 작전 가운데 하나로 꼽은 수송에서는 "약 4,000kg의 식료품을 도시 내 지정된 100곳에 한꺼번에" 보냈다.
행정청은 러시아군이 구호품을 실은 드론을 격추하고, 어린이와 노인 몫의 식량을 빼앗거나 되판다고 주장했다. 구호 꾸러미를 받은 주민을 러시아군이 붙잡아 때린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구호를 의도적으로 막고 굶주림을 만드는 행위를 "공소시효 없는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드미트로 루비네츠 우크라이나 의회 인권위원(옴부즈만)은 4월 1일 "올레시키는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버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3월 초 러시아 인권위원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적 통로를 요청했다며 "이것은 단순한 인도적 위기가 아니다. 러시아연방이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르는 의도적 테러"라고 했다. 루비네츠 위원은 이 사태를 전쟁의 부산물이 아닌 러시아의 의도적 정책으로 보고, 카호우카 수력발전소 댐 폭파의 후유증도 함께 거론했다. 근거로는 점령국이 주민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공급할 의무를 정한 제네바 협약 제55조와 제59조를 들었다.
Oleshky is not living — it is surviving. No drinking water. No electricity. No gas. People are counting every sip of water to survive one more day.
— Dmytro Lubinets (@lubinetzs) April 1, 2026
I have appealed to both Russia and the ICRC — demanding a humanitarian corridor and compliance with the Geneva Convention. Nearly a… pic.twitter.com/2hgBHI1ubc
유럽연합도 러시아에 국제인도법 준수를 요구해
유럽연합(EU)은 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상임이사회 회의에서 올레시키 문제를 따로 다뤘다. EU는 성명에서 "일시 점령된 헤르손 지역 올레시키의 상황은 특히 우려스럽다"며 "잦은 드론 공격과 지뢰가 대피와 생필품 접근을 가로막아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럽안보협력기구 민주제도인권사무소(ODIHR)가 모은 증언에 "러시아군이 주민들의 올레시키 이탈을 막았다는 진술"이 들어 있다며 "러시아가 국제인도법과 국제인권법을 완전히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알바니아와 조지아, 몰도바, 노르웨이, 우크라이나 등도 이 성명에 동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