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리비아 의회의 튀르키예 해양경계 협정 비준에 "무효"…그리스·키프로스 편에 섰다

유럽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20일(현지시간) 밤 공동성명을 내고 리비아 의회가 이날 비준한 튀르키예-리비아 해양관할권 경계 양해각서는 "무효(null and void)"라고 밝혔다. EU 고위대표도 이튿날 EU를 대표한 성명에서 이 각서가 "제3국에 어떤 법적 효과도 낳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각서 당사국 튀르키예 외무부는 리비아 하원의 결정을 환영했고, 그리스 외무부는 결정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공동성명은 그리스·키프로스와의 연대를 재확인했고, 고위대표 성명은 모든 회원국의 주권적 권리 존중을 촉구했다.
EU 정상 두 사람은 비준 당일 밤 "무효"라고 못 박아
공동성명은 브뤼셀 시간 20일 오후 9시 30분 EU 이사회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다섯 문장짜리 성명은 "리비아 의회가 오늘 이른바 리비아-튀르키예 지중해 해양관할권 경계 양해각서를 비준한 데 깊은 유감을 표한다(We deeply regret the ratification today by the Libyan Parliament of the so-called Libyan-Türkiye Memorandum of Understanding on the delimitation of maritime jurisdictions in the Mediterranean Sea)"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이 사안에 대한 EU의 입장이 2019년 EU 정상회의에서 분명히 정해졌고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협정은 제3국의 주권적 권리를 침해하고 해양법에 부합하지 않으며 무효(This agreement infringes upon the sovereign rights of third states, it does not comply with the Law of the Sea, and is null and void)"라고 규정했다.
성명은 "우리는 그리스와 키프로스에 대한 연대를 재확인한다(We reaffirm our solidarity with Greece and Cyprus)"고 밝혔다. 마지막 문장에서는 리비아에 대한 어떠한 외부 개입에도 반대한다는 EU의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성명에는 튀르키예 정부를 직접 거명해 비판하는 문장이 없었다.
고위대표는 이튿날 2019·2025년 정상회의 결론을 근거로 들어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성명은 21일 오후 6시 54분(브뤼셀 시간) 문서번호 842/26으로 발표됐다. 성명은 고위대표가 "EU를 대표해(on behalf of the EU)" 낸 형식이다. 성명은 리비아 하원이 2026년 10월 20일 2019년 튀르키예-리비아 양해각서를 비준한 데 "강한 유감(strongly regrets)"을 표했다.
고위대표는 "양해각서에 관한 EU의 입장은 확고하고 분명하다"고 밝혔다. 성명은 2019년 12월 EU 정상회의 결론과 2025년 6월 재확인된 내용을 근거로 들며 각서가 제3국의 주권적 권리를 침해하고 해양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것은 무효이며 제3국에 어떤 법적 효과도 낳을 수 없다(It is null and void and cannot produce any legal consequences for third States)"고 덧붙였다.
마지막 문장은 동지중해 전체를 향했다. 고위대표는 EU가 동지중해의 안정되고 안전한 환경에 "전략적 이해(strategic interest)"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나라가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포함한 EU법과 국제법에 따라 모든 회원국의 주권적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U 결론은 2019년부터 같은 문구로 각서를 부정해
EU가 근거로 든 2019년 12월 12일 정상회의 결론(EUCO 29/19) 제19항은 튀르키예-리비아 양해각서가 "제3국의 주권적 권리를 침해하고, 해양법에 부합하지 않으며, 제3국에 어떤 법적 효과도 낳을 수 없다"고 규정했다. 같은 항은 그해 10월 결론에서 지적한 키프로스 배타적경제수역(EEZ) 내 튀르키예의 불법 시추를 재확인했다. 정상회의는 이 항에서 "튀르키예의 이런 행동과 관련해 그리스와 키프로스에 대한 연대를 분명히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2025년 6월 26일 정상회의 결론(EUCO 12/25) 제52항도 같은 문구를 다시 담았다. 이 항은 리비아의 "우려스러운 상황"과 그것이 유럽 안보와 이주 흐름에 미칠 수 있는 결과를 함께 다뤘다. 그리스 총리실이 공개한 기자회견록에 따르면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이튿날 회견에서 튀르키예-리비아 각서를 근거 없고 불법이라고 규정한 "예전 문구가 복원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로서도, 유럽으로서도 그런 기정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we do not accept, not as Greece, not as Europe, any such fait accompli)"고 강조했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같은 회견에서 리비아 동부와 크레타섬 사이에 "새로운 이주 경로"가 열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튀르키예 외무부는 "2019년부터 발효 중"이라며 환영해
튀르키예 외무부는 20일 보도자료 제202호를 냈다. 외무부는 "리비아 하원이 오늘(10월 20일) 채택한 결정을 환영한다"며 이 양해각서가 "2019년부터 발효 중(which has been in force since 2019)"이라고 밝혔다.
외무부는 각서가 국제법과 형평의 원칙에 기초해 두 나라의 상호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고 튀르키예와 리비아의 협력을 더 깊게 한다고 주장했다. 튀르키예는 국제법에 대한 약속에 따라 지중해 유역의 신뢰와 안정, 평화를 위해 모든 파트너와 계속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보도자료에는 EU 성명이나 그리스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튀르키예의 논리는 2019년부터 같다. 하미 악소이 당시 외무부 대변인은 2019년 12월 1일 답변(QA-73)에서 리비아와의 협정으로 동지중해 튀르키예 해양관할권 서쪽 경계 일부가 정해졌다고 밝혔다. 악소이 대변인은 섬이 동지중해에서 가장 긴 대륙 해안선을 가진 튀르키예의 해안 투영을 가로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두 본토 사이 중간선의 반대편에 놓인 섬은 영해 밖으로 관할 해역을 만들 수 없고, 경계를 정할 때는 해안의 길이와 방향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 튀르키예의 논리다. 튀르키예 본토 바로 앞의 작은 섬 카스텔로리조가 자기 면적의 4,000배 넓은 관할 해역을 갖게 된다는 것이 그리스 주장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악소이 대변인은 그리스와 키프로스 그리스계의 "최대주의적이고 비타협적인(Maximalist and uncompromising)" 주장 탓에 이집트가 4만㎢를 잃었다고도 했다. 그는 튀르키예가 각서 서명 전 형평에 기초한 합의를 위해 모든 당사국에 협상을 거듭 제안했고 지금도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악소이 대변인은 두 나라가 이 협정으로 어떤 기정사실(fait accompli)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주장했다.
튀르키예 대통령실 공보국이 2020년 펴낸 자료는 튀르키예 해양관할 면적을 18만6,000㎢에서 4만1,000㎢로 줄이려는 그리스-이집트, 그리스-키프로스 합의 가능성을 이 각서가 막았다고 주장했다. 이 자료는 메이스섬을 면적 12㎢, 튀르키예 본토에서 2㎞ 떨어진 섬으로 소개했다.
그리스는 지리와 해양법이 의회 결정으로 바뀌지 않는다며 맞서
그리스 외무부는 20일 발표문에서 "그리스는 이른바 2019년 튀르키예-리비아 각서를 승인한 리비아 하원의 결정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외무부는 이번 결정이 각서가 "불법이며 무효(illegal, null and void)"라는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했다. 외무부는 "지리와 국제해양법은 일방적이고 법적 근거 없는 의회 결정으로 바뀔 수 없다(Geography and international law of the sea cannot be altered by unilateral, legally unfounded parliamentary decisions)"고 강조했다.
그리스는 법리도 다시 제시했다. 외무부는 튀르키예와 리비아가 해역 경계를 정할 적법한 근거가 되는 마주 보거나 인접한 해안을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각서가 그리스 섬들과 유엔해양법협약·관습국제법상 섬들의 해역 권원을 무시했다고도 했다. 외무부는 그리스가 이집트, 이탈리아와 국제해양법에 따라 해양경계 협정을 이미 맺어 이웃 나라의 주권적 권리를 존중해 왔다고 강조했다.
발표문의 마지막 두 문장은 대응 예고였다. 외무부는 리비아 측에 국제법에 어긋나고 동지중해 안정을 해치는 행동을 삼가라고 촉구했다. 이어 "그리스는 이미 파트너와 동맹국에 알렸으며 주권적 권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will take all appropriate action to safeguard its sovereign rights)"이라고 밝혔다.
그리스는 2019년 각서의 등거리선이 크레타섬을 지난다고 지적해
그리스 외무부가 공개한 지도 13은 범례에 각서 날짜를 2019년 11월 27일로 표기했다. 지도 설명에 따르면 각서 부속서 2는 튀르키예 해안과 리비아 해안에 기점을 18개씩 정했다. 그리스 외무부는 이 기점으로 그은 등거리선이 크레타섬 영토를 지나간다고 설명했다. 같은 지도에는 2020년 8월 6일 맺은 그리스-이집트 EEZ 경계 협정선과 튀르키예석유공사(TPAO)가 받은 광구가 함께 표시돼 있다. 튀르키예 대통령실 공보국 자료에 따르면 파예즈 사라지 당시 리비아 대통령위원회 위원장 일행은 2019년 11월 26~28일 튀르키예를 방문했다. 튀르키예 대국민의회는 2019년 12월 5일 해양관할권 각서를, 같은 달 21일 안보협력 각서를 비준했다.
각서는 이후 자원 개발로 이어졌다. 리비아 통합정부(GNU)와 튀르키예는 2022년 10월 3일 트리폴리에서 탄화수소 분야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그리스 외무부는 그날 성명에서 2019년 각서가 "불법이고 무효이며 존재하지 않는다"며 누구도 이를 원용할 권리가 없다고 밝혔다. 그리스는 이 각서를 이행하는 행위가 있으면 양자 차원과 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리스 외무부는 같은 성명에서 양자 협정이 없을 때 대륙붕은 중간선으로 정해진다며 그리스가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라 대륙붕에 대한 권리를 처음부터 당연히 갖는다고 밝혔다. 그리스 외무부 리비아 관계 소개 페이지는 통합정부가 위임 기간이 끝난 뒤 탄화수소 각서에 서명했다고 지적하고, 2019년 각서가 역내 안정과 평화에 잠재적 위협이 된다고 규정했다. 키프로스 외무부도 이튿날 보도자료에서 2019년 "각서"가 제3국의 주권적 권리를 침해하므로 불법이고 무효이며 제3국에 어떤 법적 효과도 낳지 않는다고 밝혔다.